December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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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에게 파라오 색상을 입히다 – 아돌프 폰 바이어(1905년 노벨 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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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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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염료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청색 염료인 인디고(indigo)는 우리나라의 쪽과 같은 속의 식물인 ‘인디고페라’로 만들었다. 로마시대 초기 유럽에 인디고를 공급해준 곳은 인도였다. 처음엔 그리스어로 ‘indikón’으로 불리던 것을 로마인들이 이탈리아어로 번역했고, 나중에 영어로 옮겨질 때 인디고가 된 것이다.

    인디고의 역사는 BC 15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람세스 1세와 투탕카멘 등 이집트 파라오들의 묘가 모여 있는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된 고대 이집트의 천들이 인디고로 염색되어 있었다.

    BC 7세기경에 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는 인디고 염료를 만드는 법이 적힌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점토판에는 양모를 인디고로 어떻게 염색하는지도 새겨져 있다. 후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인디고는 중요한 염료였던 셈이다.

     

    남색인 합성 인디고를 개발해 190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아돌프 폰 바이어. ⓒ public domain

    남색인 합성 인디고를 개발해 190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아돌프 폰 바이어. ⓒ public domain

     

    당시 인류가 사용한 염료의 주재료는 식물의 열매나 꽃, 뿌리, 잎 등이었다. 동물의 피나 분비물을 비롯해 철과 황토 같은 광물성 재료도 염료로 사용됐다. 그런데 천연염료의 경우 각종 불순물로 인해 선명한 색을 얻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또 천연염료는 제작 과정에 매우 까다로울 뿐 아니라 옷감에 색소를 고착시키는 매염제 등이 필요해 가격 또한 매우 비쌌다. 아름다움과 색의 견고함으로 인해 가장 인기가 좋았던 인디고 염료는 심지어 파란색의 금이라고 해서 ‘블루 골드’로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집트 파라오 같은 귀한 이들이 아니고서야 입기 힘들었던 인디고 염색이 광부들의 작업복인 청바지에 적용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등공신은 바로 인디고의 화학구조를 밝혀내 합성 인디고를 탄생시킨 독일의 유기화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다.

     

     

    이론보다 실험을 중시했던 화학자

     

    폰 바이어는 1835년 10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유럽의 지구측정시스템에 관여한 과학자 집안이어서 그도 어릴 적부터 과학과 실험에 관심이 많았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분석화학자인 분젠과 케쿨레 등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한 그는 1858년 케쿨레의 실험실에서 행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슈트라스부르크대학 교수를 거쳐 1873년에는 뮌헨대학의 화학과 교수가 되었다. 우연한 꿈을 통해 벤젠의 고리 구조를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케쿨레의 경우 미리 가설을 세우고 자연의 연구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폰 바이어의 방식은 약간 달랐다. 그는 항상 이론보다 실험을 중시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옳은지 아닌지 보기 위한 실험을 한 적이 없다. 다만 물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실험한다”는 말을 남긴 그의 연구관은 수십 년에 걸친 인디고 연구의 험난한 여정에 적합했다.

    그가 인디고의 화학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865년부터였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1880년에 마침내 합성 인디고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인디고의 정확한 화학구조를 밝혀낸 것은 1883년이었다.

    하지만 처음 합성에 성공했을 당시에는 천연 인디고로 남색을 얻을 때보다 그 비용이 훨씬 많이 들었다. 이후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가 연구를 시작한 지 정확히 32년 만인 1897년에 합성 인디고가 바스프(BASF) 사에 의해 상업적으로 실용화됐다.

    합성 인디고가 출시되기 직전인 1896년 당시 독일은 약 2000만 마르크 상당의 천연 인디고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8년 후인 1904년 독일의 합성 인디고 수출액은 그보다 훨씬 많은 2500만 마르크에 달했다. 1865년에 창립한 바스프 사는 합성 인디고 덕분에 글로벌 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반면 천연 인디고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폰 바이어가 연구에 착수하던 때 1만 9000톤에 이르던 천연 인디고 생산량은 합성 인디고가 출시된 지 10여 후인 1914년에는 약 1000톤에 불과할 만큼 대폭 감소했다. 인도의 거대한 인디고 재배 농장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영국인들이 이끌던 인디고 무역시장은 파산했다.

     

     

    합성 인디고, 화학공업의 발전 이끌어

     

    그러나 인도의 빈민층에게 합성 인디고의 출시는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됐다. 당시 인도에는 약 7000㎢의 거대한 경작지에 인디고페라가 재배되고 있었는데, 농장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그곳에 곡물이 대신 심어졌기 때문이다.

    합성 인디고의 성공은 단순히 합성염료의 발명에서 그치지 않고 의약품 및 화학공업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합성염료를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 중 발견된 아닐린의 방부효과 같은 화학적 지식으로 합성 의약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폰 바이어는 프탈레인의 화학적 성질을 밝혀내고 요산족 화합물, 탄소원자가에 관한 장력설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당시 지방족과 방향족이라는 유기화학의 두 분야를 이어주는 히드로 방향족 화합물에 관해 이론적 관점 및 실험적 관점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를 수행했다.

    합성수지 원료의 최초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 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폰 바이어다. 미국 과학자 베이클랜드는 기존 절연체를 대체할 신물질을 연구하던 중 폰 바이어가 187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키면 나무진 같은 것이 생긴다는 내용에 착안해 베이클라이트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노벨상위원회는 유기 염료 및 히드로 방향족 화합물에 관한 연구를 통해 유기화학과 화학산업 발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폰 바이어에게 1905년 노벨 화학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독일 대사가 대신 수상했던 것. 이후 다시 건강한 회복한 폰 바이어는 고령임에도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17년 8월 20일 시골집에서 발작으로 쓰러진 후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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