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알고싶다(304) —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논쟁
1976년에 리처드 도킨스(Dawkins, 1941~ )가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다윈(Darwin, 1809~1882)의 진화론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타주의(altruism)’ 등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 개체는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하기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일대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도킨스는 생물은 유전자를 나르는 수송 도구(Vehicle)와 같은 것이며, 이 수송 도구를 운전하는 기사는 유전자이며, 생물의 행동은 모두 운전기사인 유전자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도킨스는 유전자가 어떻게 살아남아 자손에게 전해지는가 하는 전략이 유전자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생물 진화를 설명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따르면 생존에 가장 알맞은 개체가 살아남고 그들만이 자손을 불릴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많은 동물들에게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이타적인 행동을 다윈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사바나에 사는 리카온(lycaon)은 무리를 짓고 사는 개과 동물인데, 이 리카온은 무리 가운데 수컷 한 마리만 생식을 하여 자손을 남길 수 있으며, 무리의 나머지 리카온들은 자기 새끼를 만들지 않고 다른 수컷의 새끼를 돌본다. 꿀벌의 경우에도 일벌은 자신의 자손을 남길 수 없다. 일벌의 일생은 처음 10일 정도는 자기보다 어린 형제에게 먹이를 주고, 다음 10일 정도는 집 청소를 하고, 이윽고 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꽃가루나 꿀을 채집한다. 이런 일벌의 일생을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다기보다는 마치 다른 꿀벌을 위해서 사는 것같이 생각된다. 이와 같이, 동물의 행동에는 자기 자신(즉, 개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많이 있다.
(참고로, 이러한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을 수학적 정식화를 통해서 설명하기 위하여 1964년에 영국의 해밀턴(Hamilton, 1936~2000)이 논문 두 편을 발표하게 된다. 한 편은 유전자가 퍼지는 방법에는 개체가 자식을 낳는 것 외에 해당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도 있다는, 소위 ‘친족 선택(또는 혈연 도태, kin selection)’의 수학적 증명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개체는 일반적으로 이 포괄 적합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이 이론을 이용하여 벌과 개미가 왜 여왕개미 또는 여왕벌만 번식하고 일개미 또는 일벌은 번식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에는 같은 무리 중의 자기와 같은 유전자나 자기 유전자와 아주 가까운, 이를테면 혈연적인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하는 것이 그 개체에게는 최상이 아니어도 차선의 선택이라고 해밀턴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이후 해밀턴은 프라이스(Price, 1922~1975)와 공동 연구를 하여 이타주의의 반대라 할 수 있는 악의의 진화에 대해 논하였고, 프라이스 방정식(Price equation)이 개체군 유전학에서 갖는 중요성을 인식시킨 데 크게 기여했다. 해밀턴의 연구는 트리버즈(Trivers, 1943~ )의 초기 연구들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한편,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의 형질 변화에 대한 설명은 할 수 있어도 동물의 행동에 관한 진화에 대해서는 생존에 가장 알맞은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논리에만 기반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존재한다. 즉, 다윈 진화론으로는 동물의 모든 행동은 개체의 생존에 유리한 것이어야 하므로, 예를 들어 공작 수컷이 놀랄 만큼 아름다운 깃털을 펼치는 것은 암컷에 대한 성적 유인보다는 아름다운 수컷이 보다 많은 암컷과 교미하여 자손을 많이 남기는 기회가 있으므로 수컷 깃털은 아름다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나그네쥐(또는 레밍)의 집단 자살이라는, 어떻게 보아도 생존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행동조차도, 나그네쥐의 개체 수가 계속 불어났기 때문에 먹이가 없어져서 집단 전체로서 자멸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든가, 원래의 생활 장소에서는 번식하기 어려운 나그네쥐들이 새로운 장소를 구하여 헤엄쳐서 이동할 때에 익사해 버린다고 하는 것과 같이,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어디까지나 생물에게 살아남기 위한 유리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물의 행동 그 자체가 과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어려운 분야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1940년대부터 로렌츠(Lorenz, 1903~1989,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나 틴베르헌(Tinbergen, 1907~1988,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의하여 동물의 행동에 관한 과학의 빛이 비춰지고 동물행동학(eth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도킨스는 그때까지의 다윈의 진화론으로는 생존에 가장 알맞은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논리에만 기반한 설명으로는 부족했던 많은 동물의 행동에 관해 동물행동학이나 해밀턴의 친족 선택을 발전시켜 이기적인 유전자의 살아남기 전략이라는 생각으로 설명한 것이다. 또한 도킨스는 생물의 모습이나 형태라는 형질뿐 아니라 동물이 가장 유리한 행동을 취하는 것도 자연도태가 유전자에게 작용하여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가설에 대하여 많은 진화론자가 반론이나 의문을 던졌고, 이런 비판 하나하나에 대하여 도킨스는 재반론을 했다.
먼저 개체의 도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 선택(또는 자연 도태, natural selection)의 예외적인 케이스에 대해서만 친족 선택(또는 혈연 도태)라는 생각을 적용하면 된다는 반론이 있다. 이 점에 대하여 도킨스는 어디까지나 유전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친족 선택은 결코 특수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개체 도태로 설명할 수 있는 부모에 의한 양육 쪽이 오히려 친족 선택의 특수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또, 도킨스는 친족 선택을 무리 도태의 하나라고 했다. 그 때문에 친족 선택이 적용되는 대상은 어디까지 개체군이고 무리나 집단이 가족 등의 혈연 집단으로 나뉘지 않아도 친족 선택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동물들이 자기와 형제의 혈연 계수가 1/2이라든가, 사촌인 경우에는 1/8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도킨스는 달팽이 껍질을 예로 들어 반론했다. 달팽이 껍질을 멋진 형태의 로그 나선(또는 베르누이 나선,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일정한 비율이 곱해져서 생기는 곡선)을 그리는데, 달팽이가 껍질을 만드는데 특별히 로그표를 이해할 필요가 없음은 당연하다. 즉, 달팽이는 별로 뛰어난 수학자가 아니어도 되며, 생물이 어떤 수학적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과 생물이 그런 수학적인 법칙을 이해하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동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몰라도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또 동물이 누가 자기와 가까운 관계(근연자)인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대한 의문 역시 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생각이 제창되고 나서 이 근연자인지(또는 혈연인지)라는 문제는 많은 생물학자 사이에서 검토되었다. 우리 인간인 경우에는 자기 친척이나 식구의 인지는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가르침으로 알게 된다. 그런데 동물들의 경우에는 사람과 달리 가까운 관계의 구별은 냄새로 판단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도킨스는 설명했다.
그리고, 동물들이 행하는 가까운 관계를 향한 이타적인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유전자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사실, 이러한 행동 유전자의 존재는 전혀 증명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어떤 형질을 지배하고 있는 형질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단지 한 개의 유전자가 어떤 형질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나팔꽃이라고 해도 그 색이나 모양은 각각 다른 유전자에 지배되고 있다.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을 지배하는 유전자를 상정한 경우에도 역시 하나의 유전자에만 지배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소식가인 사자는 먹이를 그다지 먹지 않으므로 다른 사자에게는 먹이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고맙다. 그 때문에 소식가인 사자는 결과적으로 무리의 동료를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된다.’ 한편, 도킨스는 사자의 소식 원인이 충치라고 하면, 충치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이타적인 행동을 위한 유전자의 하나일지 모른다고 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진화론이라는 입장에서 요약하면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단위는 개체나 종이 아니고 유전자이다. 유전자야말로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단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생물의 형질이 자연 선택으로 진화한 것임을 인정해도 모든 형질을 자연 선택된 결과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자연 선택이 만능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이러한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진화론자가 바로 유전학자 루원틴(Lewontin, 1929~2021)이다. 루원틴은 코뿔소의 뿔을 예로 들면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을 비판했다. 코뿔소 뿔의 수를 보면 인도코뿔소는 한 개밖에 없는데, 아프리카에 있는 휜 코뿔소와 검은 코뿔소 뿔은 두 개이다. 이 인도와 아프리카의 코뿔소 뿔의 수 차이에 대하여 어느 코뿔소가 보다 환경에 적응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루원틴은 주장했다. 코뿔소 뿔이 한 개인가 두 개인가 하는 것은 유전자가 지배한다. 루윈틴은 ‘이런 유전자가 뿔이 한 개인 개체와 두 개인 개체 가운데 어느 쪽이 보다 유리한 할 것인가를 정말로 일일이 판단할까’라고 의문을 던졌던 것이다.
확실히 이 지구상에 뿔이 한 개인 코뿔소와 뿔이 두 개인 코뿔소가 있다고 해서 어느 쪽 코뿔소가 생존에 유리한가를 하나하나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킨스가 구축한 이기적 유전자라는 이론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은 진화를 대단히 알기 쉽게 한다. 그런데 오늘날 자연 선택이 너무나도 진화론의 중심이 되어버려서 지금은 자연 선택없이는 진화를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됐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 선택이 여러 진화 요인의 하나라는 생각이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참고로, 1968년에 기무라(Kimura, 1924~1994)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유전자 부동은 생물 집단의 생식 과정에서 유전자의 무작위 표집으로 나타나는 대립형질의 발현 빈도 변화를 가리키는 생물학 용어이다)을 근거로 “중립 진화 이론”을 발표하였다. 기무라는 대부분의 비부호화 DNA가 개체의 생존과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중립성을 보이는 것을 들어, 대부분의 DNA 돌연변이 역시 중립적이라 보았다. 기무라 모토는 중립 진화 이론을 발표한 초기에 유전적 부동이 자연선택보다 진화의 주된 요인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년에 들어 기무라는 중립 진화 이론이 자연 선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한 이후 이미 13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자연 선택의 사례는 단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이 관찰되었다고 널리 알려진 유일한 예가 있는데, 영국에서 발견된 회색가지나방이라는 나방의 빛깔이 영국의 공업화에 따라 검어지는 공업암화(工業暗花)라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단순한 가역적인 적응 현상임이 밝혀졌다.
도킨스가 제창한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대단히 창조적이며 매력적인 진화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화론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이론이 아닌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가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물학 분야 등에서 계속 이어져온 목적론적 해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진화론에 여전히 남아있는 경제학적 전제를 기반하고 있다는 점 역시 언급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가 가지는 ‘사회생물학’과 유사한 환원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이에 관해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비판 등과 좀더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