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알고싶다(256) — 화학과 관련된 발견과 특허 이야기: 아스피린 합성 이전의 약들, 에테르와 아편(4/n)
이번 글부터는 화학과 관련된 발견과 특허의 구체적인 예들에 대해서 살펴볼 예정인데, 그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돈 또는 자본주의’와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례(즉, 주기율표, 동위원소 등도 ‘돈 또는 자본주의’와 어느정도의 관련은 있으나 그 관련성이 직접적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화학과 관련된 발견과 특허 이야기’라는 주제에서는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를 위주로 살펴본다.
먼저 아스피린 합성(1897년 경) 이전에 유럽에서 사용되었던 약들 중에서 현재에도 화학적으로 또는 의약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에테르와 아편에 대해서 살펴본다.
- 에테르(ether), 그리고 수술용 마취제
인류 문명의 첫 1만 년 동안 소위 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식물학의 특수한 분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꽃, 뿌리, 씨앗, 껍질, 즙, 이끼, 해초 등 식물 세상의 온갖 잡다한 재료는 신이 만든 약물로 취급받았으며, 채집해서 껍질을 벗기거나 갈고, 끓여서 유익한 약물을 만드는 데 쓰였던 것이다(실제로 영어 단어 ‘drug’는 말린 약초를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drogu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화학자 등이 사용가능한 화학물질들을 체계적으로 뒤지는 과정에 붙인 용어가 ‘스크리닝(screening)’인데, 오래 전의 스크리닝 방법은 눈에 띄는 작은 열매나 이파리를 따서 코로 냄새를 흡입하는 것, 몸에 문질러 보는 것, 먹어보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자연환경에서 무작위로 아무거나 집어먹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보낸 끝에 1847년 스크리닝이라는 방법을 이용한 첫 약이 등장했다. 당시의 의사들은 에테르를 수술용 마취제로 썼는데, 자연히 에테르와 비슷하면서도 효과가 더 좋은 화합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에테르가 몇 가지 뚜렷한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에테르는 환자의 폐를 자극했으며, 안타깝게도 폭발하기 쉬웠다.
에테르는 어떻게 인류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발레리우스 코르두스(Valerius Cordus)는 대부분의 약제사가 연금술에 빠져 있던 시대인 1515년에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의사의 아들이자 연금술사의 조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미신이나 예언에 흥미를 잃은 대신, 약제 기술이 신중한 관찰과 확인할 수 있는 결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1543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조제서>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이 책에는 225개가 넘는 약용 식물이 담겨 있는데, 코르두스는 약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약을 찾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고 한다.
코르두스의 가장 큰 성공은 오늘날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아직도 쓰이는 약물인 에테르를 합성한 것이다. 비록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황산과 에틸알코올을 이용해 충분한 양을 합성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코르두스는 에테르의 화학적 성질이 휘발성이 매우 높아 불이 붙으면 폭발하기 쉽다는 유감스러운 경향을 포함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했다고 한다. 즉, 코르두스는 합성화학자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테르는,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되는 등 현대 제약산업을 일으켜 세우게 되는데, 그전에 코르두스와 동시대 인물인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에테르가 닭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당한 시간 동안” 잠들게 한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에테르는 화학 용매로 사용되거나 두통, 현기증, 간질, 마비, 히스테리, 류머티즘 같은 여러 질병에 사용되었다가, 1812년에 에테르의 권장 활용법 중 하나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첫 권 첫 번째 페이지에 실리게 된다. 하버드 의과대학 설립자의 한 명이자 유명한 의사였던 존 워렌(John Warren)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협심증의 치료법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인데, 협심증에 관한 적절한 지식(오늘날 우리는 협심증이 심장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이 없었던 워렌은 다소 의심스러운 처방(따뜻한 물에 발을 담금, 사혈, 질산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수지, 흡연, 아편, 그리고 에테르)을 추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에테르는 협심증 치료제로 추천을 받았을 뿐 아니라 1830년에 이르면 ‘에테르 소동’이라고 부르는 웃고 노는 파티에서 취하기 위한 용도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게 된다. 즉, 빅토리아 시대의 부유한 사람들이 황산의 기름 증기를 들이마시고는 주저앉거나 가구에 부딪히거나 아예 정신을 잃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에테르는 방부제, 청소용 용액, 감기약의 거담제, 가스 제거제(즉, 항팽만제)로도 쓰이게 된다. 그러다가 에테르는 발견된 이후 최초로 수술용 마취제라는 특별한 의학적 용도로 그 쓰임이 확대되게 된다.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수술이 흔하지 않았다. 일단 어떤 수술이건 수술은 굉장히 위험했으며, 치명적인 감염을 거의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질병의 세균 이론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무균 처리 기술이 쓰이지 않았으며, 질병의 전달 경로 내지는 원인에 관한 지식이 초보적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즉, 외과 수술에 관한 일관적인 과학 이론이 없었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수술은 아무런 마취 없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대단히, 끔찍하게, 영혼이 비틀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윌리엄 모턴(William Morton)이 에테르를 이용해서 통증 없이 이를 뽑는데 성공하게 된다. 모턴은 1844년에 모턴은 하버드 의과대학에 등록한 후 화학 강의를 듣다가 에테르에 관해 알게 되었고, 사람을 잠들게 하는 비할 데 없는 효과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애완견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고 기록을 남겼으며, 암탉과 금붕어로도 에테르를 시험했는데 둘 다 부드럽게 잠들었다고 한다. 연이은 성공에 고무된 모턴은 이 달콤한 냄새가 나는 증기를 스스로 흡입했고, 정신을 잃고서 얼마 뒤에 아무런 눈에 띄는 부작용 없이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턴은 마침내 실제 환자에게 시험할 시기라고 느꼈으며 모턴은 보스턴의 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충치를 고통 없이 뽑은 것이다. 또한 1846년 10월 16일에 미국 유수의 외과 의사 상당수를 포함한 50여 명의 참관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의 에테르를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한 공개 수술이 성공하게 된다.
이후 에테르라는 수술용 마취제에 관한 소식이 널리 퍼지면서 에테르는 순식간에 수술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화학물질이 되었고, 이 물질에 대한 수요는 전례없을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는 한 가지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당시에는 에테르가 꽤 만들기 또는 정제하기 어려운 물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모턴의 에테르 공개 시연이 있었을 무렵 미국의 약제사는 각 지역에서 소규모 소매상을 운영했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300년 된 코르두스의 <조제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의 조제법 등을 각자 나름대로 해석해서 약을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뉴욕의 약제사에게서 구입한 아편의 조제법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약제사에게서 구입한 아편의 조제법과 아주 많이 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본이 되는 약의 성분이 다른 데다가 에테르는 특히 당시에는 합성하기가 어려웠다. 거의 모든 약제사의 능력을 넘어서는 유기 화학에 관한 난해한 지식과 화학적 정제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화학물질 공급업자에게서 조달한 에테르도 그다지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이는 의사들이 신뢰할 만한 표준화된 에테르 제조법이 필요했음을 의미했다.
언급했던 바와 같이, 1850년대에 에테르 수요가 하늘을 찔렀지만, 약제사에게는 병원과 의사가 원하는 표준화된 에테르를 대량생산해 제공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록펠러(Rockefeller)가 등유를 표준화했던 것처럼, 에드워드 스큅(Edward Squibb)이 에테르 생산을 표준화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관련 산업을, 나아가 제약산업을 일으키게 된다.
스큅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군의관으로 미국 해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대서양과 지중해의 함대에서 근무하면서 해군 선박에 제공되는 의약품의 형편없는 품질 등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큅의 불평은 해군 의무국의 귀에도 들어갔으며, 그에 대해 해군 의무국은 스큅에게 브루클린에 해군 연구소를 설립하고 고품질의 약을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반응했다고 한고, 스큅은 수많은 에테르 생산품의 품질 평가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스큅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러 가지 에테르가 놀라울 정도로 순도가 다양함을 알게된다. 그리고, 스큅은 일정한 품질의 에테르를 생산하는 혁신적인 제조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참고로, 남북전쟁부터 시작된 스큅의 성공은 계속 이어진다. 신뢰할 만하고 표준화된 의약품을 제조한다는 명성 덕분에 전국에서 스큅의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주 많았고, 이런 꾸준함은 스큅의 회사가 브리스톨 마이어스(Bristol Myers)에 인수된 1980년대까지 계속 썼던 원래 로고에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에테르가 휘발성 유기 액체이며 폭발성이 있기 때문에 에테르를 대체할 수 있는 수술용 마취제를 찾고자 하는 노력도 이어지게 된다. 그 중에서, 19세기 중반에 스코틀랜드 의사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과 동료 두 명은 에테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위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휘발성 유기 액체를 모두 시험해보기로 한다. 이들의 스크리닝 과정은 간단했는데, 시험용 액체가 담긴 병을 열고 증기를 흡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비활성’이라고 표시했고, 바닥에서 눈을 뜨게 된다면, ‘활성’이라고 표시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스크리닝 절차는 현대의 안전 기준에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벤젠(benzene)은 그 당시에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휘발성 유기 액체였는데, 심프슨이 스크리닝한 물질에 포함되어 있었을 게 거의 확실하다. 오늘날 우리는 벤젠이 발암 물질이며, 흡입할 경우 난소나 고환에 장기적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모한 스크리닝 방법이었지만, 1847년 심프슨과 두 동료는 클로로포름(chloroform, CHCl3)을 시험하게 되었는데, 이 물질을 흡입한 세 사람은 기분이 좋고 즐거워지더니 곧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깨어난 심프슨은 ‘활성’ 물질을 찾아냈음을 인식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클로로포름은 강력한 심혈관계 억제제로, 수술용 마취제로 쓸 경우 사망할 확률이 높다. 비록 위험한 일이었고 오늘날의 제약계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거실에서 화학물질을 하나씩 흡입해봄으로써 심프슨은 19세기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 아편(opium)
우리는 초기 인류가 대자연의 이파리 수북한 선반을 샅샅이 뒤짐으로써 다양하고 효과적인 약을 골라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지식수준이 신화와 마법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선사시대의 인류는 자연에서 나오는 치료제를 찾아내 이용했던 것인데, 그렇게 알려진 약 몇몇은 오랜 세월에 걸친 시험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알코올(alcohol, 알코올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설명한다.)과 아편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아편에 관해서는 이전 글(과학, 알고싶다(153)) 참고]이번 글에서 아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아편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자라는 예쁜 야생 식물인 양귀비에서 나온는데, 아편이 오랫동안 사용된 이유 중 하나는 구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덜 익은 양귀비 열매에 흠집을 내면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을 모아서 말린 뒤 가루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opium이라는 단어는 ‘즙’을 뜻하는 그리스어 opion에서 나왔다고 한다.). 기원전 3400년경의 수메르인도 아편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수메르인은 아편의 기분 좋은 효과를 앗시리아인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인에게 이어졌고, 이집트인에게 흘러갔으며, 훗날 아라비아 상인이 아편을 아시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는 폭발적인 설사가 특징으로 종종 목숨도 위협하는 질병인 이질의 치료제로 쓰였다고 한다(참고로, 아편은 환각 효과뿐 아니라 변비를 유발하는 효과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양귀비즙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의 글에 등장한다고 한다.
아편을 의약품으로 쓰기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단점은 물에 대한 용해성이 낮다는 것이다. 4000년 동안 변함없이 물을 이용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아편을 조제해온 끝에 중세시대에 이르러 몇 명의 연금술사들이 좀 더 효과적인 조제법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 중에서,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당시 최고 수준의 연금술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그는 아편을 알코올에 녹이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파라켈수스가 알코올에 녹여 만든 아편제는 20세기 후반에 이를 때까지 쓰이고 있었으니까 제약계에서는 불멸의 존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826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Friedrich Serturner)는 처음으로 아편에서 순수한 활성 성분을 분리해낸 연구자가 된다. 제르튀르너는 이 물질에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따온 ‘모르핀(morphine)’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아편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다.
참고로, 제르튀르너가 정제한 모르핀은 1827년부터 독일의 천사약국(Engel-Apotheke)에서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천사약국의 주인은 엠마뉴엘 머크(Emanuel Merck)로, 1668년에 독일 약국을 세운 프리드리히 머크(Friedrich Merck)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사약국은 급속히 성장했고, 결국 잘 알려져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가 된다. 즉, 머크의 빠른 성장은 모르핀 판매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초의 하성 의약품인 아스피린과 관련된 다음 글에서도 살펴보겠지만, 1897년에 독일 바이엘(Bayer)의 연구진은 화학적 합성 기법을 이용해 모르핀을 변화시킨(즉, 아세틸(acetyl) 작용기가 두 개가 추가로 도입된)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 물질이 헤로인(heroin)이다. 헤로인으로 인해, 오히려 아편 중독을 악화시켰다는 사실이 분명해짐으로써 바이엘은 언론의 성난 공격을 받았는데, 대중 홍보 측면에서 현대 제약산업이 겪은 최초의 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아편이 어떻게 고통을 덜어주는지는 수 세기 동안 과학계가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였는데, 영국의 애버딘대학교와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연구하던 두 연구진이 1975년에 이 신경화학계의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이들은 아편이 엔도르핀 수용체(endorphin receptor)라고 하는 수용체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엔도제너스 모르핀(endogeneous morphine, 내인성 모르핀)’의 줄임말로,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르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고로, 인간에게는 9가지 엔도르핀 수용체가 있는데, 아편 성분의 각각은 특정 수용체와 결합하게 되며, 수용체가 활성화되는 독특한 패턴이 각 성분의 생리학적 효과를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아편 성분이 특정 엔도르핀 수용체와 결합하면, 수용체는 다른 분자를 생산하도록 명령하는 뉴런에 신호를 보내고, 이 분자가 다시 뇌에서 도취감이나 통각 상실을 일으키는 회로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에테르와 아편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약의 생산 방법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던 19세기의 경향은 곧 바뀌게 되는데, 전혀 다른 유형의 약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합성화학에 기반한 약 개발인데, 다음 글에서는 아스피린에 관해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