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알고싶다(203) — 열역학 제2법칙에 관하여: 카르노와 클라우지우스
열역학에 대한 초기 관심의 대부분은 더 나은 증기 엔진(열기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고려에서 비롯되었다. 열 에너지가 엔진을 구동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은 카르노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카르노는 이상적인 엔진의 경우 온도 T1의 열원에서 온도가 낮은 일정한 온도 T0으로 유지되는 냉각기 방열판으로 열을 전달하여 일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즉, 엔진은 일정량의 일을 수행할 때마다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사이클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카르노는 열기관이 물레방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이다. 물이 떨어질 때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열은 더 높은 온도에서 더 낮은 온도로 “떨어질” 수 있어야만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 카르노는 열이 칼로릭이라는 불멸의 유체로 간주되던 시기에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그의 근본적인 통찰력은 이후 열역학 전체 분야의 발전을 촉발했다.
비가역성의 첫 번째 정량적 표현으로 이어질 열역학 제2법칙이, 마이어와 헬름홀츠에 의한 에너지 보존 원칙의 일반적인 공식화 이전인, 1824년에 카르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열기관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은 운동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데, 이는 현대 언어에서 에너지와 운동량의 보존에 해당한다. 물체의 움직임은 변환되지만 그 에너지와 운동량은 다른 물체로 전달될 뿐이다. 그런데 열기관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과 열기관에 대한 열역학적인 설명 사이의 비교는 카르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 에너지 뿐만 아니라 열 에너지도 보존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떨어지는 물은 물레방아를 작동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카르노는 열기관을 작동시키기 위해 두 가지 열적 소스(열원과 방열판)를 가정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엔진 시스템에 열을 공급(열원)하고 다른 하나는 다른 온도에서 열원에 의해 제공된 열을 흡수(방열판)한다. 엔진을 작동시키는 것은 다른 온도의 두 열적 소스 사이에서 엔진을 통한 열의 움직임인 것이다.
그리고, 카르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어떤 기계가 가장 효율이 좋을까? 손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열이 일을 하지 않고 변환되는 과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카르노 사이클]
카르노는 등온 및 단열 과정을 겪는 기체를 고려했다. 가스가 일정한 온도 T1이라는 조건에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팽창함에 따라 열 ΔQ1의 양을 흡수한다. 지점 C에서 지점 D로 압축되는 동안 일정한 온도 T0에서 방열판에 열 ΔQ0의 양을 전달한다. 마찰로 인한 에너지 손실이 없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경우 단열 단계에서 열 손실이 없으며 무한히 느리고 가역적으로 움직이는 열기관의 일은 ABCD 영역의 면적으로 표시된다. 열기관 내 가스 자체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전체 과정에서 열원으로부터 열량 ΔQ1을 끌어오고 ΔQ0을 싱크로 전달하며 내부 에너지 변화량 ΔU는 0이다. 따라서 열기관이 A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완료한 순 일(net work)은 Δw = ΔQ1 − ΔQ0이다. 이상기체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시스템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면 수행한 일은 시스템이 받은 열 에너지와 내보낸 열 에너지의 차이와 같아야 한다.
한편, 열기관의 효율은 시스템이 받은 에너지에 대해 시스템이 수행한 일의 비율로 정의할 수 있으므로 위의 식 양변을 ΔQ1로 나누면, Δw / ΔQ1 = (ΔQ1 − ΔQ0) / ΔQ1이 된다. 그리고, 지난 글(과학, 알고싶다(202))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ΔQ1 / ΔQ0 = T1 / T0이므로, 카르노 열기관의 최대 효율 efficiency = (T1 − T0) / T1임을 알 수 있다(앞에서도언급했지만, T0과 T1는 각각 방열판과 열원의 온도이다.).
카르노 사이클은 마찰 등에 의한 에너지 손실 없이 가역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가능한 최대 효율을 나타내며 사이클의 모든 단계가 가역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피스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가 무엇이든 효율성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보다 더 효율적인 엔진은 뜨거운 저장소에서 더 차가운 저장소로 일정량의 열을 전달하여 일을 수행해야 하고 덜 효율적인 엔진을 다른 방식으로 구동하여 일을 더 뜨거운 저장소로 다시 이동하는 열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시스템을 ‘초기 상태로 되돌리지 않는 가역 사이클’이라는 논리적 불가능성으로 이어지므로 이론적으로 최대 효율은 기계 구성에 의존할 수 없다. 그런데, 열기관의 효율은 1을 초과할 수는 없지만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하면 이것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즉,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열은 에너지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열과 기계 일 사이의 변환은 금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기관의 효율에 대한 한계라는 주제는 열역학 제1법칙 외에 또 다른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이유로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
1850년에 클라우지우스는 에너지 보존이 제공하는 새로운 관점에서 카르노 사이클을 설명했다. 그는 두 가지 열적 소스에 대한 필요성과 카르노가 언급한 열기관의 이론적 효율성 공식이 열기관의 특정 문제를 표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르노 사이클의 한 주기는 열기관을 초기의 기계적 및 열적 조건으로 되돌린다. 에너지 “변환”을 표현하는 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균형 관계는 이제 시스템의 상태에 대한 두 변환 과정의 영향, 열적 소스 간의 열 유속 및 열을 일로 변환하는 새로운 등가 관계로 결합된다. 열기관의 기계적 효과와 열적 효과를 연결하는 새로운 과학인 열역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클라우지우스의 연구는 자연이 제공하는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는 없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상적인 카르노 사이클에서 생산된 일에 대한 대가는 한 열적 소스에서 다른 열적 소스로 전달되는 열에 의해 지불된다. 그리고 한쪽에서 생성된 기계 작업과 다른 쪽에서 열 전달로 표현된다는 결과는 서로 등가로 연결된다. 이 동등성은 양방향으로 유효하다. 즉, 반대로 작업하면 동일한 기계가 생산된 일을 이용함으로써 초기 온도 차이를 복원할 수 있게 된다(냉장고의 원리). 하지만, 단일한 열원을 사용하여서는 열기관을 만들 수 없다.
클라우지우스는 모든 실제 열기관이 이론에 의해 예측된 이상적인 값보다 낮은 효율을 갖는다는 그래서 “손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카르노와는 다르게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카르노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그의 설명은 이상적인 상황에 해당한다. 그것은 열기관의 효율에 대한 한계 특성에 대한 정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이상적인 상황에 대한 위상이 바뀌었다. 에너지 보존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과학은 이상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일 뿐만 아니라 “손실”을 포함하여 자연 자체를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등장했고, 이것은 비가역성이 물리학에 도입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 엔진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에너지 보존에 손실을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을까? 효율성을 어떻게 높이고 줄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카르노가 열기관에서 전력 손실의 가능한 원인으로 주목한 것은 푸리에의 열 전도였다. 더 이상 이상적인 상황의 사이클가 아니라 “실제” 사이클인 카르노 사이클은 19세기에 발견된 두 가지 보편성인 에너지 변환(그리고 보존)과 열 전도가 수렴하는 지점이 되었다. 켈빈은 그 중요성을 재빨리 파악했고 이 두 가지 발견의 결합을 통해 1852년에 최초로 열역학 제2법칙을 제안하게 된다. 즉, 기계 에너지의 열 에너지로의 변환을 향한 보편적인 성질 또는 특성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화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명백한 우주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보편적”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플라스의 세계는 영원했고 이상적인 영구 운동 기계였지만, 켈빈의 우주론은 단순히 새로운 이상적인 열기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보존되는 세계에서 비가역적인 열 전도의 결과를 통합하게 된다. 이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에너지의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열이 운동으로 전환되는 엔진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세계는 하나의 변환에서 다른 변환으로 진행하면서 열적 평형의 최종 상태인 “열적 사망”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르노의 고찰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열 에너지가 더 뜨거운 물체에서 더 차가운 물체로 전달될 때만 열 에너지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글(과학, 알고싶다(201))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동등한 진술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켈빈이 제공했으며 카르노의 통찰력과 거의 일치한다.
바로, Δw / ΔQ1 = (ΔQ1 − ΔQ0) / ΔQ1식에서 ΔQ0가 0보다 크다는 것이다. ΔQ0가 음수이면 열기관은 온도 T0인 방열판을 열원으로 해서 열 에너지를 추출하여 직접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금지된다. 열기관이 양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면 ΔQ1도 양수이고 열기관의 효율은 0과 1 사이에 있어야 한다.
열기관의 가스 샘플이 마찰이 없는 피스톤에서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 가스가 일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열 에너지가 가스에 추가된다고 가정한다. 유용한 기계적 일의 양은 피스톤에 가해지는 외력과 피스톤의 위치 변화로부터 결정될 수 있다. 수행된 유용한 일은 실험이 빠르게 수행되든 느리게 수행되든 변경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이 매우 빠르게 가열되면 사용된 열 에너지의 일부가 일을 수행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외부 환경으로 빠져나가는 손실이 생겨 열기관의 효율이 낮아진다. 시스템의 최종 상태는 각 경우에 동일하므로 내부 에너지도 동일하고, 내부 에너지는 상태 함수(state function)이지만 열 에너지는 상태 함수가 아니기 때문에, 열기관의 가스 샘플에 대한 가열이 수행되는 방식에 따라 열기관의 효율은 달라지게 된다. 무한히 느린 가열 및 피스톤의 위치 변화라는 조건에서 카르노 사이클 과정 전체에서 시스템이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스가 피스톤에 가하는 힘은 항상 피스톤에 대한 구속력(restraining force)과 동일해야 한다. 이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열기관에 추가된 모든 열 에너지는 유용한 일로 전환되어 피스톤을 밀어낸다. 또한 이 경우,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평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피스톤에 의해 가해지는 압력의 극미한 증가를 통해 가스를 압축하는 일을 하기 시작하다. 따라서 이 과정은 가역적이며 시스템이 통과하는 각 상태는 (이론적으로) 에너지 소비 또는 손실 없이 도달할 수 있다.
이제 시스템 X가 n개의 가역적인 카르노 열기관을 통해 온도 T0의 열원으로부터 열을 받는 변화 주기를 겪는다고 가정해 보자. 즉, 카르노 열기관 Ci 각각은 열원으로부터 열량 ΔQi0를 받고 열량 ΔQi를 온도 Ti의 시스템 X와 교환하는 단일 사이클을 차례로 수행한다. 각 엔진 Ci와 시스템 X는 전체 사이클이 완료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므로, T0의 열원에서 흡수된 열 에너지의 순합(net sum)은 모든 카르노 열기관이 함께 수행한 총 일과 같아야 한다(참고로, 원칙적으로 모든 일반 주기가 가역적인 카르노 사이클을 나타내는 아주 작은 과정들로 (무한히) 나눌 수 있음을 클라우지우스가 최초로 깨달았다.). 수행한 일이 양수이면 순 효과(net effect)는 온도 T0의 열원에서 열을 끌어와 일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게도, 열역학 제1법칙을 위반하지는 않지만 켈빈이 공식화한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한다. 즉,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Σin ΔQi0 = 수행한 일}이 되는데, 모든 열 에너지는 동일한 온도(T0)의 단일 열원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이 경우 켈빈의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수행한 일은 양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ΔQ1 / ΔQ0 = T1 / T0이라는 식으로부터 {Σin ΔQi0 = Σi (ΔQi T0 / Ti)}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열 에너지는 동일한 온도(T0)의 단일 열적 소스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켈빈이 공식화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수행된 일은 양수가 될 수 없으므로, {Σin ΔQi0 = Σi (ΔQi T0 / Ti) ≤ 0}을 의미한다. 즉, 동일한 온도의 단일 열적 소스 조건에서 단순히 열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유용한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T0이 일정하고 양수이므로 {Σi (ΔQi / Ti) ≤ 0}이다.
한편, 사이클이 역방향으로 반복되는 경우 역시, 정확히 동일한 고려 사항이 적용되지만, 이 경우는 열이 반대 방향으로 이동함에 따라 각 ΔQi는 반대의 기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든 수행되는 완전한 가역 사이클에 대해 {Σi (ΔQi / Ti) ≤ 0}이라는 식을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합계가 정확히 0인 경우이다.
클라우지우스는 가역 과정에서 추가된 열의 양을 열 에너지가 추가된 온도로 나누게 되면 그 결과가 상태 함수(state function)이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으며, 그는 시스템의 엔트로피 변화(dS)를 {dS = dQrev / T}로 정의했다.
이 식을 사용하면 식 {dU = dQ – p dV }과 식 {dH = dQ + V dp }은 dQr에 대한 표기법에 대한 걱정 없이 정확한 형태(exaxct form)로 다음과 같이 작성할 수 있다. (아래 미분 방정식의 각 항은 변수 쌍(켤레 변수, conjugate variables)를 사용하여 작성되며, 각 항의 단위는 에너지이다.)
dU = T dS – p dV
dH = T dS + V dp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엔트로피 S는 상태 함수이므로 특정 물리적 상태에서 평형 상태에 있는 정의된 시스템은 그 상태에 도달하는 수단에 관계없이 정의된 엔트로피를 갖게 된다. 참고로, 위의 식에는 절대 엔트로피(absolute entropy)가 아닌 엔트로피의 변화만 정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된 표준 상태에서 시작하는 변환 과정에 대한 엔트로피 변화를 결정할 수 있다.
정의만으로는 엔트로피라는 개념 또는 그 값이 아주 흥미롭다거나 유용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엔트로피의 중요성은, 에너지, 운동량 또는 물질과 같이 보존된 양과는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한다는 사실에 있다.
각각의 온도가 Thot 및 Tcold인 뜨겁고 차가운 물체가 열 접촉 상태에 있어 양의 값을 갖는 열 에너지 Q가 그들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뜨거운 물체의 온도는 Q / Thot만큼 떨어지는 반면, 차가운 물체의 엔트로피는, Q / Thot보다 큰, Q / Tcold만큼 상승한다. 따라서 온도 증감률에 의해 온도가 낮은 쪽으로 열 에너지가 흐름에 따라, 두 물체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물론 열이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이 방향으로 열 에너지를 이동시키려면 일을 해야 한다. 즉, 전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 본다면, 우주는 그 내부의 에너지 손실 또는 열 에너지 분산에 의해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즉, 열적 평형의 최종 상태인 “열적 사망”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 차가운 물체에서 더 뜨거운 물체로 열 에너지가 자발적으로(즉, 일을 하지 않을 경우) 전달되는 역 과정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금지된다. 엔트로피는 종종 “무질서(disorder)”로 설명되며 실제로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관찰된 거시 상태와 호환되는 미시 상태의 수로부터 계산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볼츠만의 열역학 제2법칙 부분에서 설명한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이번 글에서는 거시적 규모의 물체의 무질서가 엔트로피와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교과서에서 책이나 옷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수선한 사무실이나 침실을 엔트로피에 대한 비유로 언급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된다.
여러 번 언급했던 바와 같이, 시스템의 열역학적 엔트로피는 열 변화와 온도로 정의되며 온도에 따라 단조롭게 증가한다. 그렇지만, 다음의 간단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스템의 전체 겉보기 질서는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더라도 감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간단한 예로 기름과 물의 분리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기름과 물의 층 분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엔트로피에 의한 것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균일한 혼합물이 두 층으로 빠르게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보다 “정렬된” 시스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사실 거시적 규모가 아니라 미시적 규모의 무질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