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알고싶다(103) — 생활 속 과학 이야기 – 초콜릿
초콜릿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입안에서 액체로 변하도록 설계된, 수백 년에 걸친 요리와 공학적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은 후 깨물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콜릿 덩어리는 혀에서 열을 흡수해 액체가 되어감에 따라, 당신은 혀가 더 차가워진다고 느끼게 되고, 이어서 달고 쓴 맛과 향이 입안으로 퍼질 것이다. 이윽고 과일이나 견과류의 풍미 등이 나고, 마지막으로 진흙 같은 느낌의 맛이 목 뒤를 타고 넘어간다.
즉, 초콜릿은 입안에 닿으면 곧바로 액체로 변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와 같은 초콜릿 기술은 수백 년에 걸친 요리와 공학적 노력의 결정체이다. 처음에는 차나 커피와 다른, 자신만의 지위를 지닌 음료를 만들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실패한 뒤, 초콜릿 과학자들은 부엌의 팬 등을 이용해서 핫초콜릿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서 핫초콜릿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즐겁고 현대적이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초콜릿 과학자들은 고체 형태의 초콜릿을 만들어냈고, 초콜릿 산업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초콜릿 과학자들이 결정구조(특히 코코아 지방(또는 코코아 버터)의 결정구조)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코코아 지방은 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방 중에서도 가장 질이 좋은 지방 중 하나로(참고로, 코코아 지방은 주로 포화(saturated)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포화지방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우유를 이용해서 만드는 버터나 올리브 오일 등과 최고의 지방이라는 자리를 놓고 다툰다. 순수한 코코아 지방은 마치 질 좋은 무염버터처럼 보일 수 있는데, 초콜릿의 재료일 뿐만 아니라, 고급 화장용 크림과 로션에도 쓰인다.
코코아 지방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지방이다. 우선, 체온에 녹는다. 즉, 보통의 경우 고체로 저장할 수 있지만 사람의 몸과 닿으면 액체가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코코아 지방은 많은 천연 항산화물질(antioxidant)을 함유하고 있어 악취를 방지하고, 버터의 경우, 선반에 몇 주만 방치해도 먹을 수가 없지만, 코코아 지방은 여러 해동안 저장해도 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코코아 지방의 성질은 화장품 크림 과학자들에게도 희소식이었지만, 초콜릿 과학자들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코코아 지방은 또 다른 놀라운 성질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코아 지방은 결정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코코아 지방으로 만든 초콜릿 바는 강도가 꽤 세다. 코코아 지방이 결정구조를 이루는 이유는, 코코아 지방의 주성분이 트리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 TG, 또는 triacylglycerol, TAG)라고 불리는 분자이며, 트리글리세라이드가 쌓이는 방법에 따라 여러 다른 형태의 결정을 이루기 때문이다. 즉,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더 차곡차곡 쌓일수록 코코아 지방의 결정이 더 조밀해지며(즉, 밀도가 높아지며), 코코아 지방의 밀도가 높아지면 녹는점도 높아지고 더 안정되며 단단해진다.
초콜릿 과학자들은 이런 결정들에 그 물리적 특징에 기반해서 1형~5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1형과 2형은 기계적으로 부드럽고 상당히 불안정하다. 그리고, 1형과 2형은 밀도가 더 높은 형태인 3형과 4형으로 쉽게 변한다. 1형과 2형은 아이스크림 위에 초콜릿 코팅을 만드는 데 유용한데, 녹는점이 16℃로 낮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으로 인해 차가워진 상태에서도 입안에서 녹을 수 있다. 그리고 3형과 4형 결정은 부드럽고 무르며, 부러질 때 똑 부러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초콜릿 제조자들은 3형과 4형의 결정을 피하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3형과 4형이 가장 만들기 쉽기 때문에, 만약 시중의 초콜릿을 조금 녹인 후 그걸 식힌다면, 만지면 부드러운 느낌이 나고 윤이 나지 않으며 손에서 잘 녹는 3형과 4형 결정을 거의 확실히 얻게 된다. 한편, 이렇게 얻은 초콜릿은 오랜 시간에 걸쳐 더 안정한 5형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초콜릿은 당과 지방을 내놓게 된다고 한다. 5형은 극단적으로 밀도가 높은 결정이다. 초콜릿을 단단하게 해주고 표면을 마치 거울처럼 마감해서 광택이 나게 하며, 부러질 때 똑소리가 나며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5형은 다른 결정 형태에 비해 녹는점이 높아서 34℃에서 녹기 때문에, 입안에 들어가면 녹는다(참고로, 5형 코코아 지방 결정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템퍼링(tempering)’이라고 하는, 미리 만들어진 5형 결정 ‘씨앗’을 고형화 마지막 단계에 첨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기 시작하는 것은 초콜릿을 유지시키고 있는 5형 코코아 지방의 결정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초콜릿은 입 안에서 점점 따뜻해지다가 임계 온도인 34℃에 이르게 되고 녹기 시작한 것이다.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이 변화(소위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위해서는, 결정 분자를 서로 묶어주고 있는 결합을 깰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분자는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즉, 녹는점에 다다른 초콜릿은 필요한 이 여분의 에너지를 당신의 몸에서 가져간 것이다. 초콜릿은 이 에너지를 당신의 혀에서 소위 잠열의 형태로 얻는데, 이 때문에 당신은 기분 좋게 시원해지는 효과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땀을 흘릴 때와 비슷한 냉각 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 땀의 경우는 고체가 액체가 되는 게 아니라, 액체(땀)가 기체 형태로 바뀌면서 필요한 잠열을 피부로부터 흡수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런데, 코코아 결정의 경우, 초콜릿이 녹으면서 시원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입안에서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만들어진다. 이 두 느낌의 조합이 바로 초콜릿만이 갖는 독특한 느낌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입 안에서 만들어지는 핫초콜릿의 경험은 바로 이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잘 결합해 단단한 고체 코코아 지방 덩어리를 이뤘던 초콜릿 성분이 이제 녹아서 혀 속 미뢰(taste(or gustatory) bud 또는 맛봉오리, 주로 혀나 연구개 등 구강에 있는 세포로, 맛세포가 꽃잎처럼 겹쳐진 형태이다.)로 흐를 수 있게 되고, 고체 코코아 지방 안에 갇혀 있던 코코넛 알갱이가 풀려나게 된다.
다크 초콜릿은 일반적으로 50%의 코코아 지방과 20%의 코코넛 가루를 함유하고 있다(이 경우 포장지에는 두 성분의 합인 ‘코코아 고형분 70%’라고 적혀있다). 나머지 성분의 대부분은 설탕이다. 즉, 설탕이 30% 정도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 초콜릿은 그렇게 달진 않으며, 어떤 제품의 경우에는 전혀 달지 않기도 하다. 이 이유는, 코코아 지방이 녹으면서 설탕뿐만 아니라 초콜릿의 다른 성분들도 방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코코아 가루에는 알칼로이드(alkaloid, 자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질소 원자 등을 포함하여 대개 염기성을 띠는 화합물의 총칭)와 폴리페놀(polyphenol, 식물에서 발견되는 방향족 알코올 화합물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타닌, 페닐프로파노이드(플라보노이드, 리그닌 등)으로 분류된다.)이라고 알려져 있는 화학물질도 나온다. 여기에는 카페인(caffeine)과 테오브로민(theobromine) 같은 분자가 포함되는데, 바로 이들이 쓰고 떫은맛을 낸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 쓴맛과 신맛의 수용체를 활성화하고 설탕의 단맛이 상쇄되는 것이다. 풍미를 증진시키기 위해 소금을 첨가하면, 초콜릿의 맛이 한 차원 더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맛 좋은 요리의 재료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요리에 사용된 초콜릿이 그냥 먹는 초콜릿과 맛이 다른 이유는 따로 있다. 기본 맛은 혀의 미뢰에서 만들어지며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그리고 우마미(고기맛 혹은 감칠맛)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풍미는 냄새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감기 등으로 코가 막혔을 때 (코의 냄새 수용체가 점액에 덮여서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 맛을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초콜릿의 복잡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입안에서 풍기는 초콜릿의 향 덕분이다. 초콜릿을 요리할 때는 이런 풍미 분자 중 상당수가 증발하거나 파괴된다고 한다. 핫초콜릿을 부엌이 아니라 입속에서 만든다는 발상의 획기적인 점은, 코코아 지방이 풍미 분자를 품고 있다가 초콜릿을 먹을 때(즉, 녹을 때) 600개 이상의 새로운 분자를 입과 코로 방출되게 한 것이다. 코가 처음으로 감지하는 풍미 분자 중 하나는 ‘에스테르(ester, -CO2-, 복숭아, 코코넛, 사과, 포도, 배 등의 냄새를 내는 물질들은 에스테르 작용기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용기를 가지는 분자(이하 에스테르 분자)들이 만들어 내는 과일 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공 전의 코코아 빈(cocoa bean, 카카오 열매의 씨앗)에는 이런 풍미 분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풍미 분자들이 생기게 된 것일까? 코코아 빈이 초콜릿으로 변하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단계의 공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코코아 열매 안에는 희고 부드러우며 지방이 많은, 크기가 자두만 하고 모양은 아몬드와 비슷한 씨앗(즉, 코코아 빈)이 서른 개에서 마흔 개 들어 있는데, 이 코코아 빈을 수확해 땅에 더미로 쌓은 후 썩도록 놔둔다. 2주가 넘어가는 동안 코코아 빈 더미는 분해돼 발효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코코아가 발아해 자라지 않도록 씨를 죽이는 게 목적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코코아 빈의 구성 성분이 초콜릿 풍미 분자를 포함하는 전구체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슨 작업을 어떻게 해도 초콜릿 비슷한 것은 조금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과일 향을 내는 에스테르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도 바로 이 발효 과정이다. 코코아 빈 안에서 효소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알콜과 산이 반응한 결과 에스테르 분자가 생기는데, 모든 화학반응이 그렇듯, 수많은 다양한 조건이 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원료의 비율, 주변 온도, 산소 이용 가능성 등등. 이 말은 초콜릿의 맛은 코코아 빈이 얼마나 익었는지 또는 종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뿐만 아니라, 열매를 발효시킬 때 얼마나 높이 쌓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발효하도록 놔뒀는지, 그때의 날씨가 어땠는지 등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는 의미이다. 초콜릿 제조사들이 이런 미묘한 조건들에 대해서 말하는 법이 없는 이유는, 그게 회사 기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코코아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원재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설탕과 비슷하게, 코코아는 기본 재료로서 세계시장에서 사고팔리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식료품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언급한 바와 같이, 코코아의 종류나 준비 과정을 달리하면 대단히 다른 맛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코코아를 구입하려면 이 두 가지 요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최상의 초콜릿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런 지식을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한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대의 날씨 변화 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질 좋은 초콜릿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며, 이것은 좋은 다크 초콜릿이 비싼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코코아의 맛과 향에는 발효한 에스테르 분자에 의한 섬세한 과일 맛과 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은 코코아의 흙내음, 견과류 향, 그리고 감칠맛의 차이까지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풍미는 발효 과정 이후에 열매를 말리고 로스팅할 때 만들어진다고 한다. 커피를 만들 때처럼, 로스팅으로 각각의 코코아 빈은 새로운 반응이 일어나는 화학공장이 된다.
로스팅을 시작하게 되면, 코코아 빈 안에서 먼저 대부분 당과 전분 분자인 탄수화물이 열에 의해 서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프라이팬에 설탕을 넣고 가열할 때 일어나는 캐러멜화 반응(caramelization, 참고로, 식빵이나 쿠키를 구울 때, 오븐 안에서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색이 변하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가 있고 이와 같은 구움색이 제품의 완성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모두 당의 갈변(browning)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갈변 반응은 식품을 가공하거나 저장하는 중에 그 빛깔이 점차 갈색을 띠게 하는 여러가지 반응을 뜻하는데, 효소적 갈변 반응과 비효소적 갈변 반응으로 나눌 수 있고, 비효소적 갈변 반응의 대표적인 예가 캐러멜화 반응과 아래에서 설명할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다.)이라고 할 수 있다. 코코아 빈 안에서 캐러멜화 반응이 일어나면서 코코아 빈은 흰색에서 갈색이 되고, 견과류 맛이 나는 무척 다양한 캐러멜 풍미 분자가 만들어진다. 참고로, 어떤 당 분자(그게 코코아 빈 안에 있든, 프라이팬 위에 있든, 또는 다른 어디에 있든)가 가열됐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는, 당이 탄수화물(carbohydrate)이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이라는 이름은 탄소(‘carbo-’)가 수화(hydrate)되었다는 뜻인데, 탄수화물을 가열하면 길었던 분자가 좀 더 작은 단위의 분자로 끊어지고 이들 중 일부는 너무 작아 증발하게 되고(즉, 냄새의 원인이 된다.), 남게 된 분자의 탄소-탄소 결합의 일부가 ‘탄소-탄소 이중결합’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탄소-탄소 이중결합 구조는 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탄소-탄소 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들이 약간만 있어도 캐러멜화한 당의 색을 노르스름한 갈색으로 바꾸게 된다. 좀 더 로스팅하면 당의 일부가 탄소-탄소 이중결합이 더욱 많아지게 되고, 탄 맛과 향이 나며 어두운 갈색이 된다. 그리고 완전히 로스팅하면 숯이 된다. 즉, 모든 당이 탄소가 되고, 검은색이 되는 것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일어나는, 코코아의 색과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반응은, 앞에서 언급했던, 마이야르 반응이다. 이 반응은 당이 단백질과 반응할 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는, 탄수화물이 세포 세계의 연료라고 한다면 단백질은 세포 세계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백질이 세포를 건설하고 내부의 일을 도맡는 구조 분자이기 때문이다. 씨앗(견과류나 열매 등)은, 식물이라는 공장을 세우고 돌릴 세포 기계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그 안에 지니고 있으며, 코코아 빈 안에도 당연히 많은 단백질이 있다. 그리고 코코아 빈의 온도가 160℃가 넘어가면, 이들 단백질이 탄수화물과 마이야르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마이야르 반응이 없다면, 세상은 훨씬 맛이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이야르 반응은 구운 채소나 빵의 딱딱한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먹음직스런 맛을 만들어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코코아 빈에서 마이야르 반응은 초콜릿의 견과류 맛과 감칠맛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떫은맛과 쓴맛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발효된 뒤 로스팅을 거친 코코아 빈을 갈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북서부 지역 사람들이 마시던 원조 핫 ‘초콜라틀(chocolatl, 쓴 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을 얻을 수 있는데, 처음으로 초콜릿을 재배했던 올멕인(기원전에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과 마야인들은 이런 식으로 초콜릿을 마셨다고 알려져 있다. 수백 년 동안, 초콜릿은 의식을 위한 음료로 떠받들어졌고 최음제로도 사용되었으며, 코코아 빈은 화폐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유럽의 탐험가들이 17세기에 초콜릿 음료를 알게 된 이후, 초콜릿은 유럽인의 최고 음료 자리를 놓고 차나 커피와 경쟁하는 듯 했지만, 결국 경쟁에서 탈락했다. 17세기 당시에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노예를 동원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값싼 설탕이 유럽으로 밀려들어 왔지만, 이런 설탕을 넣어도 당시의 초콜릿 음료는 여전히 껄끄러운 맛을 지닌, 기름지고 무거운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초콜릿은 이후 200년 동안 이런 음료로 받아들여졌다. 이국적인 음료지만,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은 음료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산업 공정이 개발되면서, 초콜릿의 운명은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첫 번째는 1828년 독일의 초콜릿회사 반 호우튼(Van Houten)이 개발한 회전 압착기다. 발효와 로스팅을 거친 카카오 빈을 이 압착기로 부수면 코코아 지방이 흘러나왔고, 반 호우튼은 그걸 분리해 코코아 고체만 얻을 수 있었다. 지방질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코코아 고체는 더 미세한 가루로 분쇄될 수 있었고, 껄끄러운 느낌이 많이 사라지면서 부드럽고 매끈하며 순한 맛을 내게 됐다. 이런 형태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코코아는 마시는 음료로 널리 퍼질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코코아 지방을 제거해 정제한 뒤 코코아 가루를 따로 빻아 만들고, 얻어진 코코아 가루와 코코아 지방을 다시 섞어 합치는 것이다. 즉, 분리한 후에 다시 합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설탕을 조금 넣으면 이상적인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코코아 지방 함유물은 코코아 가루나 설탕과는 별도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맛에 어울리는 각기 다른 종류의 자극을 입안에서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은, 냉장고가 개발되기 전에도, 코코아 지방의 항산화 특성으로 인해서 상업적인 판매가 가능할 만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초콜릿 산업이 태어난 것이다.
설탕을 30% 첨가한 초콜릿도 너무 쓰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맛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성분이 첨가되기도 한다. 바로 우유다. 우유는 초콜릿의 떫은맛을 크게 줄여주고 코코아를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해줘서 초콜릿을 좀 더 달콤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19세기, 스위스는 초콜릿에 우유를 넣은 첫 번째 나라였다. 당시로는 신출내기 회사였던 네슬레(Nestle) 사에서 만들었는데, 이 회사는 지역에서 만든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한 우유를 받아서 가공해 유통기한이 길고 운반이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저장 기간이 긴 두 가지 제품이 결합하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던 것이다. 따라서 밀크초콜릿에는 유지방도 들어 있는 것이다. 초콜릿 색상이 연할수록 유지방 함유량이 많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유지방 역시 코코아 지방과 마찬가지로 포화지방산과 불포화 지방산의 혼합이다. 하지만 녹는점은 코코아 지방보다 낮다. 그래서 코코아 함유량이 높은 다크초콜릿보다 유지방이 많이 함유된 밀크초콜릿이 입안에서 더 부드럽게 살살 녹는다. 참고로 오늘날 초콜릿에 들어가는 우유의 종류는, 당연하게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이것은 밀크초콜릿의 맛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초콜릿에 대해서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성분들이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맛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도 영향을 주는(즉, 중독성과 관련이 있는)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참고로, 테오브로민의 분자 구조를 보면 카페인과 거의 비슷함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능도 카페인과 거의 같다고 알려져 있는데 각성 효과는 카페인보다 명확히 낮다. 하지만, 특정 용량(비록 많은 양이긴 하지만) 이상의 테오브로민은 독으로 작용한다. 즉, 용량이 독을 만드는 것이다.)이다. 코코아 빈에는 카페인이 소량 들어있기 때문에, 코코아 가루를 거쳐 만들어지는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 그리고 테오브로민으로 카페인과 마찬가지로 각성제이자 항산화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테오브로민은 개에게 독성이 있어서(아주 소량으로도 치명적이라고 한다. 우리 몸은 독성이 있는 각성 물질인 테오브로민을 무해한 다른 분자로 재빨리 바꾸지만, 개의 테오브로민 화학은 그렇게 민첩하지 못해서 분자가 체내에 쌓인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개들이 초콜릿을 먹고 죽는다고 한다(개에게 초콜릿이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고양이는 어떨까? 고양이에게도 똑같이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개와 다른 점이 있다. 개를 비롯해 거의 모든 포유동물과 달리 고양이는 달콤한 맛을 모른다. 고양이의 미뢰는 당류와 탄수화물을 감지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신호도 뇌에 전달하지 못한다. 즉, 고양이는 달콤함에 전혀 유혹당하지 않기 때문에, 개와는 달리, 초콜릿을 애절하게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초콜릿을 보관할 때는 고양이가 찾아내지 못하게 잘 숨기는 것이 좋다.). 하지만 테오브로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훨씬 약하기 때문에, 즉 각성 수준이 커피나 차에 비해 낮기 때문에, 하루에 초콜릿 바를 열 개씩 먹는다고 해도 진한 커피 한두 잔을 마신 정도밖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초콜릿은 피우는 마약에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원인 물질로 알려져 있는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도 함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물질들 역시 그 함유량이 지극히 낮아서 그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고 한다.
초콜릿은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정규 군대 배급의 필수 물품이다. 초콜릿은 에너지를 위한 당 공급원이 되고, 뇌 활성화를 위해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을 제공하며, 심한 운동으로 잃어버린 지방을 보충해주는 데다, 몇 년에 걸쳐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 판매량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초콜릿 소비량이 많은 상위 20개국 가운데 16개 나라가 북유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온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체인 초콜릿이 입안에서 액체로 쉽게 변환되기 위해서는 주위 환경이 시원해야 하는데, 너무 따뜻한 기후에서는 초콜릿이 선반에서 녹아 있거나 냉장고에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처음으로 초콜릿을 발명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북서부 지역 사람들이 고체 바를 만들지 않고 음료로만 마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